Was Is Will
유경희 개인전
2024.10.17(목)-10.30(수)
오프닝 2024.10.17(목) 5pm
Was Is Will
그루터기의 신화 그리고 행방불명된 기호들
나무가 잘려 나가고 땅에 박힌 뿌리, 그 그루터기의 단면을 들여다본다. 무엇이 보이는가? 계절, 세월, 혹은 삶… 눈 앞에 있지만 사라져버린 존재, 굳건히 서 있던 한 그루의 나무. 그 잘려버린 생명의 실체를, 우리는 마주한다. 깊게 내리박힌 뿌리와 무수히 하늘로 뻗은 가지의 수를 헤아려보자. 죽음으로 귀의한 나무, 하월(夏月)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지저귀던 새들, 바람에 흔들리던 푸른 이파리, 빛나던 모든 것은 사라졌다. ‘저녁에 지는 햇빛’(餘暉)처럼. 머물다 사라지는 것들의 소중함, 모든 것은 빛바랜 과거가 된다는 명제를 선언한다. 아득하게 내려앉는 여휘(餘暉)의 시간, 그 찰나의 세계관을 감각해보자. 오늘 우리는 기존의 관찰자적 시선에 머무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작품과 마주할 것이다. 작가는 흔쾌히 그 낭만적 유영의 통로가 되어줄 것이다.
유경희 작가는 섬유 매체를 통한 실험적인 활동을 즐겨왔다. 이색적인 작업의 과정에서 탄생한 오브제들은 작가의 예술적 감정의 본질에 가장 맞닿아 있다. 빗살무늬 토기의 중첩된 이미지, 반복적 행위의 결정체 사이잘삼, 구조적 볼륨감의 바스케트리까지. 작가가 발휘하는 색채에 대한 섬세한 감각, 숨겨진 형상을 시각화해낸 메세지에 우리의 공감각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1만년 전, 과거의 시간에 존재하던 규칙성과 정형미를 지금 이자리에 불러와 표명하는 것은 이성적 성찰의 힘만으로는 구현될 수 없다.
인간의 죄는 자연과의 조화를 거부하는 땅에서 발아한다. 한없이 무력하지만, 인간이 이 땅의 중심이라 여기는 세상에서 정복의 꿈은 사라지지 않는다. 산업적 도구들은 이성의 승리, 기술의 고도화를 상징한다. 이 상징성을 염두에 두고, 나무 위의 인공적 오브제들에 시선을 떨궈보자. 목재가 주는 따뜻함, 철재가 주는 차가움, 그 대비로 인해 각자의 물성이 뚜렷해지는 현상을 우리는 목도한다. 조우와 어긋남, 일상에서 사물이 지닌 기호는 자연과 만나 재설정된다. 어둠과 빛이 모두 한 지평선을 비추듯, 개체를 둘러싼 기호는 모두 지워지고, 물건은 그렇게 물질이 된다.
심연에 대한 고찰은 삶을 단편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자세에서 더욱 깊어지는데, 인위적이지 않은 작가의 내적 감정과 단단한 사유의 힘이 이 지점에서 발휘된다. 시간의 허망함에 절망하는 동시에, 나의 시간을 세심하게 바라보는 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현존한다는 믿음, 순수한 가치를 가장 우위에 놓는 예술가의 소신은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자발적으로 획득한 이 형식 너머의 생동감은, 새로운 미적 기준, 그리고 무한한 파급력을 동반한다. 낭만이 저주받는 시대에 피어난 예술가의 고유한 창조성은 그렇게 신화가 된다.
예술비평, 김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