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주제
느슨한 0
0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다. 서로 다른 힘이 밀고 당기며 어느 한쪽으로도 완전히 기울지 않는 순간, 우리는 그 지점을 “0”이라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균형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아주 작은
움직임에도 중심은 흔들리고, 각자의 무게는 다시 자리를 바꾸며 또 다른 균형을 찾아간다. 그렇게 0은 도착해야 할 하나의 좌표라기보다, 끊임없이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잠정적인 상태가된다.
《느슨한 0》은 이처럼 완전히 맞물리지 않은 채 서로를 지탱하는 관계에서 시작한다. 박미정, Shih Po-wei, 이정훈은 서로 다른 매체와 방식으로 사물과풍경, 시간과 기억을 바라본다. 세 사람의 작업에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두 개 이상의 힘이 존재한다. 사라지는 것과 남겨지는 것, 가벼움과 무거움, 질서와 어긋남.
세 작가가 만들어내는 균형은 서로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것은 어느 경우에도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압도하거나 지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힘은 함께 존재하고, 그 사이에서 잠시하나의 상태를 만들어낸다.
어쩌면 우리가 균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히 같은 무게가 양쪽에 놓인 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조금 기울어지고, 흔들리고, 다시 중심을 찾아가는 움직임까지를 포함해야 비로소 균형은 지속될 수 있다. 그렇다면 “0” 역시 완벽한상쇄의 결과가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이 자신의 무게를 잃지 않은 채 잠시 가까워지는 지점일 수 있다.
《느슨한 0》에서 세 작가의 작업은 하나의 답을 향해 수렴하지 않는다. 서로다른 시간과 무게, 기억과 감각을 가진 채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진다.
그들의 작업은 ‘완전한 0’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무게를 가진 채 그곳을 향해 움직이는 것. 혹은 그 느슨하고 유동적인 상태를 따라, 다시 “0”을향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